1997년 수기사 포병여단에서 발생한 군 의문사 사건
작성자 정보
- 커뮤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6 조회
- 목록
본문
일시 : 1997년 8월 28일(목) 오전 07시 40분경장소 : 경기도 가평 수기사 포병여단사망자 : 운전병 이병 김00(20세)
-사건 개요-

1. 1997년 8월 28일(목) 오전 07시 40분경 포대 시험평가를 위한 준비태세 훈련중이었음.
2. 사망자 이병 김00은 사고차량(5톤 포차)은 영내 탄약고에서 모의탄을 적재한 뒤, 소산 진지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하려고 했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음.
3. 앞 범퍼 위에서 옆차 운전병인 병장 장00과 사망자 김00이병이 함께 에어펌핑 작업을 하였음.
4. 그런데 사고차량이 5~10도 경사에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감.
5. 장00병장이 사망자에게 "운전석으로 달려가서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지시함.
6. 앞 범퍼 위에 있던 사망자 김00이병은 아래로 뛰어내린 뒤 운전석으로 달려가서 올라타려던 중 미끄러져서 추락함.
7. 추락과 동시에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졌고, 넘어진 사망자의 몸통 위로 트럭의 뒷바퀴가 밟고 지나감.
8. 이로 인해 내장&대동맥이 파열되었음.
9. 오전 08시 13분경에 헬기로 수도병원으로 응급 후송함.
10. 55일 뒤인 1997년 10월 23일 오전 01시에 혈복강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
1. 혼수상태였던 김00이병이 숨을 거두기 며칠 전에 깨어남.
2. 2명의 선임이 자신을 구타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털어놓았음.
3. 트럭에 깔렸다는 날에 "자신의 선임병 2명이 배, 옆구리, 가슴을 구타했다"며,병실 침대 옆에 있는 링거 매는 쇠기둥을 가리키면서 "이런걸로 마구 때려서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주장함.
4.
5. 아버지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발생 2일 전에 아들을 보러 면회를 갔는데,챙기고 간 만두하고 황도복숭아를 아들이 잘 먹지 못했다고 함.
6. 물어보니까 선임이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서 입이 잘 벌려지지 않는다고 했음.
7. 또 턱이 아파서 윗니와 아랫니를 꼭 아문채로 말했다고 함.
8. 아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고참들한테 폭행과 얼차려를 심하게 받는다"며"이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함.
-사건의 의문점-
1. 해당 부대 포대장이 "사고 당시에 옆차 운전병인 장00병장과 죽은 김00이병 밖에 없어서 사고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고 함.
2. 장00병장은 "죽은 이병을 한참 찾았다", "잘 보지 못했다"는 등 횡설수설 진술함.
3. 김00이병이 사망 2일 전에 "고참들의 구타때문에 몸이 아파서 청평병원에서 2차례 진료받았다"고 했는데, 김00이병 사망 후 청평병원 진료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함.
4. 당시 김00이병을 깔고 지나간 5톤 포차는 모의탄 20발까지 실어서 굉장히 무거웠음.
5. 그 중량이 골반을 밟고 갔다면 뼈가 다 으스러졌을거임.
6. 실제로 수도병원에서 "골반뼈가 다 으스러졌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함.
7. 그런데 10일이 지났을 때 통풍시킨다면서 간호장교와 의무병이 김00이병 허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댐.
8. 부모가 깜짝 놀라서 "골반뼈가 다 으스러졌다는데 그렇게 흔들어도 되느냐"고 물었음.
9. 간호장교가 "뼈는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함.
10. 부모가 "그럼 척추도 괜찮냐"고 물으니까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함.
11. 이등병 부모가 의무기록과 x-ray 필름을 요구했는데, "사라져서 없다"는 답변이 돌아옴.
-결과-
1. 해당 사건은 차량사고로 종결됨.
2. 김00이병은 사망 한달 후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됨.
3. 유가족은 현재까지 차량 사고가 아닌 구타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함.
4. 유가족들은 가해자들의 신원도 알고 있다고 함.
-김00이병의 생전 사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ㅜㅜ
-사건 개요-

1. 1997년 8월 28일(목) 오전 07시 40분경 포대 시험평가를 위한 준비태세 훈련중이었음.
2. 사망자 이병 김00은 사고차량(5톤 포차)은 영내 탄약고에서 모의탄을 적재한 뒤, 소산 진지로 이동하기 위해 출발하려고 했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음.
3. 앞 범퍼 위에서 옆차 운전병인 병장 장00과 사망자 김00이병이 함께 에어펌핑 작업을 하였음.
4. 그런데 사고차량이 5~10도 경사에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감.
5. 장00병장이 사망자에게 "운전석으로 달려가서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지시함.
6. 앞 범퍼 위에 있던 사망자 김00이병은 아래로 뛰어내린 뒤 운전석으로 달려가서 올라타려던 중 미끄러져서 추락함.
7. 추락과 동시에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졌고, 넘어진 사망자의 몸통 위로 트럭의 뒷바퀴가 밟고 지나감.
8. 이로 인해 내장&대동맥이 파열되었음.
9. 오전 08시 13분경에 헬기로 수도병원으로 응급 후송함.
10. 55일 뒤인 1997년 10월 23일 오전 01시에 혈복강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
-의혹의 시작-
1. 혼수상태였던 김00이병이 숨을 거두기 며칠 전에 깨어남.
2. 2명의 선임이 자신을 구타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털어놓았음.
3. 트럭에 깔렸다는 날에 "자신의 선임병 2명이 배, 옆구리, 가슴을 구타했다"며,병실 침대 옆에 있는 링거 매는 쇠기둥을 가리키면서 "이런걸로 마구 때려서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주장함.
4.
해당기사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4/1949787_19594.html (1분 16초부터)
5. 아버지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발생 2일 전에 아들을 보러 면회를 갔는데,챙기고 간 만두하고 황도복숭아를 아들이 잘 먹지 못했다고 함.
6. 물어보니까 선임이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서 입이 잘 벌려지지 않는다고 했음.
7. 또 턱이 아파서 윗니와 아랫니를 꼭 아문채로 말했다고 함.
8. 아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고참들한테 폭행과 얼차려를 심하게 받는다"며"이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함.
-사건의 의문점-
1. 해당 부대 포대장이 "사고 당시에 옆차 운전병인 장00병장과 죽은 김00이병 밖에 없어서 사고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고 함.
2. 장00병장은 "죽은 이병을 한참 찾았다", "잘 보지 못했다"는 등 횡설수설 진술함.
3. 김00이병이 사망 2일 전에 "고참들의 구타때문에 몸이 아파서 청평병원에서 2차례 진료받았다"고 했는데, 김00이병 사망 후 청평병원 진료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함.
4. 당시 김00이병을 깔고 지나간 5톤 포차는 모의탄 20발까지 실어서 굉장히 무거웠음.
5. 그 중량이 골반을 밟고 갔다면 뼈가 다 으스러졌을거임.
6. 실제로 수도병원에서 "골반뼈가 다 으스러졌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함.
7. 그런데 10일이 지났을 때 통풍시킨다면서 간호장교와 의무병이 김00이병 허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댐.
8. 부모가 깜짝 놀라서 "골반뼈가 다 으스러졌다는데 그렇게 흔들어도 되느냐"고 물었음.
9. 간호장교가 "뼈는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함.
10. 부모가 "그럼 척추도 괜찮냐"고 물으니까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함.
11. 이등병 부모가 의무기록과 x-ray 필름을 요구했는데, "사라져서 없다"는 답변이 돌아옴.
-결과-
1. 해당 사건은 차량사고로 종결됨.
2. 김00이병은 사망 한달 후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됨.
3. 유가족은 현재까지 차량 사고가 아닌 구타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함.
4. 유가족들은 가해자들의 신원도 알고 있다고 함.
-김00이병의 생전 사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ㅜㅜ
1997년 수기사 포병여단에서 발생한 군 의문사 사건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